제9화
학예회와 별 랜턴
12월의 바람은 바다에서 불어올 때마다 콧등을 찡하게 얼릴 만큼 매서웠다.
언덕 위 쓰키미자카 초등학교 체육관에는 지금, 나무토막과 물감과 골판지 상자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카이! 눈을 떠, 카이! 얼어붙은 얼음 심장 따위 내가 다 녹여줄 테니까!"
무대 한가운데에서 호시카와 코하루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소리쳤다.
학예회 연극 『눈의 여왕』 총연습. 코하루가 맡은 역할은 눈의 여왕에게 끌려간 소년 카이를 찾기 위해 북쪽 끝까지 여행하는 소녀 겔다였다.
"――자, 컷! 호시카와 양, 감정은 아주 좋은데 대사는 '내 눈물로 녹여줄게'란다. 대본 벌써 세 번이나 고쳤잖니?"
객석 접이식 의자에 앉아 계시던 담임 모리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치셨다.
"아하하……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제 진짜 말이 튀어나와서요!"
코하루는 노란 케이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머리를 긁적였다. 주머니 속에서 손바닥만 한 빨간 털실 뭉치―― 장갑의 츠쿠모가미 폿케가 꼬물꼬물 움직였다.
"코하루, 대사까지 마음대로 바꾸다니 깜빡이도 정도가 있다폿케!"
"쉿, 폿케! 큰 소리 내지 마."
코하루가 소곤거리며 주의를 준 순간, 무대 안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코하루. 장난칠 생각이라면 배역을 바꿔주었으면 좋겠네."
얼음 옥좌에 꼿꼿이 앉아 있던 사람은 학급 반장 구조 아야메였다.
등을 곧게 펴고 제비꽃색 리본을 단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손에는 두툼한 대본이 쥐어져 있었다.
"눈의 여왕 역할은 완벽하게 완성해 두었어. 네 실수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으으, 너무 엄격해, 아야메……."
"딱, 딱히 엄격하게 군 게 아니야.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아야메는 홱 고개를 돌렸지만 귓바퀴가 살짝 붉어져 있는 것을 코하루는 놓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으아아아악! 비켜라, 비켜어어어어!"
체육관 무대 막 뒤에서 갈색 털 조끼를 입은 소년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머리에는 커다란 나뭇가지 뿔. 콧등에 반창고를 붙인 이누카이 타이가였다. 순록 역할이었다.
"나한테 맡겨라! 눈밭을 가르는 질풍의 순록 등장…… 으악! 뿔이 커튼 줄에 엉켰다아아악!"
허우적거리며 바둥거리던 타이가는 커튼에 칭칭 감겨 마치 도롱이벌레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버렸다.
체육관 안에 와르르 웃음꽃이 터졌다.
"이누카이 군. 순록은 커튼을 갉아먹지 않아. 게다가 대본에 그런 대사는 없어."
아야메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자 타이가는 얼굴이 새빨개져 소리쳤다.
"시끄러워! 난 나만의 독창적인 연기 플랜을 시험해 본 것뿐이라고! 누구 나 좀 구해줘ーー!"
코하루가 웃고 있을 때, 무대 한쪽 구석에서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다가왔다.
은빛 머리칼을 흔들며 무표정한 얼굴로 엉킨 줄을 툭툭 풀어준 사람은 카이 역할을 맡은 요미 카나타였다.
"……꼴사납다, 이누카이."
"으윽…… 고, 고맙다, 전학생. 아니, 그게 아니라……."
타이가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카나타는 감색 코트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코하루는 그런 카나타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는 언제나처럼 말수가 적은 카나타. 하지만 그가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을 훔치는 괴도 미드나이트라는 사실과 백 년 전의 외로움에서 태어난 어둠 '와스레나'에게 협박당해 추억을 모으고 있다는 비밀을 탐정단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카나타의 주머니에는 5시에 멈춰 선 은빛 회중시계와 오래된 짝 잃은 빨간 장갑이 들어 있을 터였다.
연습이 끝나고 무대 소품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코하루가 대걸레질을 하고 있을 때 체육관 구석에서 타이가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아, 저쪽 끝 좀 잡아줘! 같이 나르자!"
타이가가 말을 건 상대는 혼자서 커다란 골판지 빙산을 옮기려던 카나타였다.
카나타는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아무 말 없이 빙산의 반대쪽을 번쩍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이 무거운 세트를 함께 나르는 동안 타이가가 코를 킁킁거렸다.
"응……? 가사실 쪽에서 갓 구운 쿠키 냄새가 나는데! 초코칩 쿠키다!"
"……앞이나 보고 걸어. 떨어뜨린다."
"헤헷, 알고 있다고, 카나타!"
그 순간 카나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은빛 앞머리 틈새로 회청색 눈동자가 타이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불렀어?"
타이가는 덧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어? 카나타는 카나타지. 맨날 '전학생'이라고 부르면 어색하잖아. 우리 이제 동료잖아!"
카나타는 숨을 훅 들이켰다가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멋대로 해."
짧게 내뱉는 카나타의 귓가가 아주 미세하게 붉어져 있었다.
"봤냐폿케, 코하루!"
코하루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민 폿케가 소곤소곤 속삭였다.
"카나타 녀석, 조금 기뻐 보였다폿케. 타이가도 가끔은 그럴싸한 말을 한다폿케~."
"응……!"
코하루는 가슴 깊은 곳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카나타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12월 10일. 학예회 당일.
쓰키미자카 초등학교 체육관은 학부모들과 마을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객석 맨 앞줄에는 코하루의 엄마 나츠미가 '코하루 파이팅!'이라고 큼직하게 적힌 수제 응원 깃발을 펼쳐 들고 있었고, 무뚝뚝한 아빠 히로시는 비디오카메라를 단단히 쥐고 계셨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는 병원 근무 일정을 조율해 달려온 아야메의 엄마 레이코 의사의 모습도 보였다.
"떨린다……."
무대 뒤에서 코하루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세차게 뛰었다.
"정신 바짝 차려, 코하루."
옆에서 순백의 드레스와 은빛 망토를 두른 아야메가 말했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 없어. 증거는 우리가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연습의 양이야."
"아야메…… 응!"
"나도 오늘은 커튼에 절대 안 걸릴 테니까!"
순록 뿔을 흔드는 타이가에게 아야메가 "당연하지" 하며 새침하게 대꾸했다.
그들의 다정한 대화를 조금 떨어진 기둥 그늘에서 카나타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카나타의 손은 코트 안주머니를 아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모리 선생님의 맑은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고 부저가 울렸다.
『눈의 여왕』의 막이 올랐다.
연극은 순조로웠다. 아야메의 눈의 여왕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답고 냉철했으며, 타이가의 순록은 활기찬 몸짓으로 객석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마침내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았다.
얼음 궁전 깊숙한 곳, 카이가 차가운 바닥에 홀로 주저앉아 있는 장면.
겔다 역의 코하루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갔다.
"카이! 드디어 찾았어……!"
시곗바늘은 오후 4시 5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무대 위의 카나타는 공허한 눈빛으로 얼음 퍼즐을 바라보는 카이를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하루는 알 수 있었다. 카나타의 눈동자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은 결코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윽고――.
온 마을 스피커에서 오후 5시 '저녁노을 차임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르골처럼 포근하고 아련한 선율.
평소라면 이 차임벨이 다 울리고 나면 황혼의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차임벨의 마지막 여운이 사라진 바로 그 순간――.
딸깍.
무겁고 날카로운 금속음이 체육관 벽에 걸린 대형 시계에서 울렸다.
시침과 분침이 5시 정각을 가리킨 채 미동도 없이 뚝 멈춰 섰다.
"어……?"
객석 누군가가 웅성거렸다.
무대 조명이 일제히 파직 불꽃을 튀기더니 퍽 하고 꺼져버렸다.
창밖이 마치 검은 먹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어두워졌다.
끈적이고 차가운 보랏빛과 검은빛의 안개가 무대 바닥 밑에서 무더기로 뿜어져 나온 것이다.
"꺄악!"
시린 냉기가 몰아치며 체육관 창문 유리에 순식간에 하얀 서리꽃이 피어났다.
손발 끝이 찌릿찌릿 아파올 만큼 얼어붙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객석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퐁, 퐁 조그만 빛의 알갱이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분홍빛과 금빛을 띤 소중한 추억의 빛들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어…… 라……? 나, 왜 여기에 앉아 있는 거지……?"
맨 앞줄의 나츠미가 응원 깃발을 툭 떨어뜨리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학예회……? 누구 학예회……?"
(엄마의……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이 뽑혀 나가고 있어……!)
안개 깊은 곳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겹쳐진 불길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모아라…… 카나타…… 약속한 백 번째 추억을……!』
와스레나의 목소리였다.
무대의 어둠 속에서 카나타의 손에 검은 실크햇과 하얀 가면이 나타났다.
괴도 미드나이트의 증표. 카나타의 회청색 눈동자가 거칠게 요동쳤다.
『가면을 쓰면 너의 기억도, 어머니도, 모든 것을 돌려주마……!』
카나타가 가면을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카나타 군, 안 돼!"
코하루의 절규에 카나타의 손이 멈칫 멈추었다.
온몸을 떨면서도 일어서려는 타이가, 수첩을 꼭 끌어안은 아야메, 미소를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카나타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엄마의 머플러를, 기억하고 있어."
카나타의 입술이 가늘게 달싹였다.
"누구를 위해 뜨는지도 잊어버린 채 매년 작은 머플러를 뜨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을……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되찾은 추억 따위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야!"
카나타는 팔을 번쩍 치켜들더니 하얀 가면을 무대 바닥에 온 힘을 다해 내동댕이쳤다!
쨍그랑!
가면은 산산조각이 나더니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난…… 이제 누구의 추억도 빼앗지 않아!"
『――너마저 나를 배신하는 거냐!』
와스레나의 분노에 찬 비명이 체육관을 뒤흔들었다.
천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 머리 위로 영원히 저물지 않는 황혼의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다.
검은 안개가 뭉쳐 거대한 소녀의 형상―― 와스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안개 머리칼 사이로 푸른 물망초 꽃이 차갑게 번뜩였다.
수많은 검은 촉수가 허공에 뜬 추억의 빛들을 집어삼키려 뻗어 나갔다.
"절대 안 둬!"
코하루는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노란 케이프 주머니에서 빨간 장갑이 퐁 날아올랐다.
"폿케, 가자!"
"맡겨달라폿케!"
폿케가 공중을 돌아 코하루의 왼손에 쏙 감겼다.
"별 돋보기, 오픈!"
코하루가 별 돋보기를 치켜들자 찬란한 주황색 빛이 터져 나왔다.
거센 바람이 일며 주황색 탐정 케이프, 금빛 별 단추, 별 베레모로 변신했다.
"그 \"분실물\", 제가 전해 줄게요!"
코하루는 별 돋보기를 겨누고 검은 안개를 향해 빛을 발사했다.
키이이잉!
하지만―― 빛은 와스레나의 그림자에 닿는 순간 튕겨 나가며 힘없이 부서졌다.
"큭……!?"
"포케에엣!? 상대가 너무 거대해서 빛이 닿지 않는다폿케!"
와스레나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소용없다. 그깟 조그만 돋보기 따위로 백 년의 사무친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어!』
검은 안개가 거세게 밀려들었다. 별 돋보기의 렌즈에 쩍 금이 가며 하얗게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빛이…… 꺼져버려……!)
코하루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바로 그때였다.
"코하루! 포기하지 마!"
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아야메가 코하루 곁으로 뛰어왔다.
손에는 시오리 씨에게서 건네받은 『물망초 수첩』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증거라면 여기에 있어! 네가 지금까지 되찾아준 수많은 사람들의 미소가! 너 혼자 짊어지게 두지 않아!"
"아야메……!"
뒤이어 쿵쾅쿵쾅 거친 발소리가 다가왔다.
"우리들을 잊지 말라고!"
타이가였다. 순록 뿔을 내던지고 코하루 일행의 앞을 든든하게 가로막아 섰다.
"코하루는 절대 포기 안 해! 우리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으니까 마음껏 날려버려!"
"타이가……!"
그리고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카나타가 코하루의 오른쪽에 나란히 섰다.
"……호시카와. 네가 말했지. '분실물은 마중 나와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나도…… 믿어보고 싶어. 너의 그 빛을."
동료들이 코하루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코하루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찰칵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다.
잊어버려도 다시 기억해 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곁에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을 함부로 빼앗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코하루는 별 돋보기를 두 손으로 꽉 쥐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모두의 소중한 추억은 내가 전부 다…… 되돌려줄 거란 말이야아아앗!"
그 순간 별 돋보기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딸깍, 딸깍, 딸깍!
테두리가 시계 톱니바퀴처럼 회전하며 빛의 입자를 휘감고 형태를 바꾸어 나갔다.
렌즈가 활짝 펼쳐지고 황동 세공이 섬세한 새장처럼 솟아오르더니, 그 한가운데에 샛별 같은 찬란한 크리스털이 불을 밝혔다.
――별 랜턴.
코하루를 감싼 빛이 한층 더 찬란하게 타올랐다.
케이프는 순백의 겉감과 노을빛 안감을 지닌 우아한 이중 케이프로 진화했고, 목가에는 하얀 털 장식이, 머리 위에는 조그만 별 티아라가 내려앉았다.
왼손의 폿케 역시 손목의 하얀 털 방울이 별처럼 반짝였다.
"포, 포케에엣!? 대단하다폿케! 온몸에서 따뜻한 빛이 넘쳐흐른다폿케!"
코하루는 새롭게 탄생한 별 랜턴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빛이여…… 퍼져라아아앗!"
화아아악!
랜턴 중심에서 노을빛 따스한 빛의 파도가 온 체육관으로 퍼져나갔다.
검은 안개가 빛에 닿자마자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따뜻해…… 대체 뭐냐, 이 눈부신 빛은ーー!』
와스레나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허공을 떠돌던 추억의 빛방울들이 즐겁게 춤을 추며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쏙쏙 스며들었다.
"어머……? 내가 왜 멍하니 서 있었담."
나츠미가 눈을 깜빡거리며 응원 깃발을 다시 꽉 쥐었다.
"코하루! 코하루 힘내라ーー!"
객석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되살아났다.
랜턴의 빛이 검은 안개를 완벽하게 몰아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무대 구석에서 마지막 남은 검은 안개가 거대한 갈고리손이 되어 솟구쳐 올랐다.
『이놈…… 카나타! 배신자에게 어떤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는지 똑똑히 가르쳐주마!』
날카로운 그림자 손톱이 무대를 휩쓸며 카나타의 몸을 사정없이 옭아맸다.
순식간에 그를 공중으로 낚아챘다.
"큭……!"
"카나타 군!"
코하루는 별 랜턴을 품에 안고 필사적으로 무대를 내달렸다.
펄쩍 뛰어올라 허공에 매달린 카나타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코하루의 손끝이 카나타의 차가운 손끝에 간신히 닿았다.
"손 놓지 마, 카나타 군!"
코하루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지만―― 카나타는 코하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스르르 손의 힘을 풀었다.
그 눈동자에는 두려움도 절망도 없이, 티 없이 맑고 평온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코하루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너무나 다정하고 슬픈 미소.
카나타는 스스로 맞잡은 손가락을 풀고 코하루의 손을 가만히 밀어냈다.
"……호시카와."
카나타의 고요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날…… 잊어버려."
"어……?"
쨍그랑!
거대한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가 카나타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다음 순간, 그림자도 카나타의 모습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카나타 군……?"
코하루는 무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체육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깨진 높은 창문 틈으로 첫눈이 하얗게 흩날려 내리기 시작했다.
"야…… 카나타……? 어디 간 거야, 카나타……!"
타이가가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닥을 쾅쾅 치며 절규했다.
아야메는 수첩을 끌어안은 채 망연자실 서 있었다.
코하루의 바로 앞, 카나타가 서 있던 바닥 위에 무언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코하루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올렸다.
은빛 체인이 달린 낡은 회중시계.
시곗바늘은 정확히 오후 5시를 가리킨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카나타가 분신처럼 품고 다니던 소중한 시계였다.
"거짓말…… 이지……?"
코하루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려 시계의 차가운 유리를 적셨다.
"잊어버리라니……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이야……!"
체육관 안에는 첫눈의 고요함과 코하루의 서러운 울음소리만이 아프게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