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괴도 미드나이트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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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3분

어젯밤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호시카와 코하루는 꼬박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이했다.

등교하는 언덕길에서도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가장 좋아하는 갓 구운 멜론빵 냄새가 포근하게 감도는 집 앞 빵집을 한숨을 푹푹 쉬며 지나칠 정도였다.

"코하루, 한숨만 푹푹 쉰다폿케. 어제 그 은빛 머리카락이 그렇게 충격이었냐폿케?"

노란 레인 케이프 주머니에서 빨간 털실 뭉치 츠쿠모가미 폿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야 믿고 싶지 않은걸. 카나타 군이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을 빼앗는 괴도라니……."

5학년 2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가 자리에 언제나와 다름없는 요미 카나타의 모습이 보였다.

찰랑이는 은빛 머리칼, 차가운 회청색 눈동자. 턱을 괸 채 겨울의 시린 파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 병원 옥상에서 가면이 벗겨졌던 그 괴도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안녕, 코하루."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학급 반장 구조 아야메였다.

어젯밤 엄마와 눈물의 화해를 나눈 이후로 아야메는 코하루를 '호시카와 양'이 아니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코하루"라고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다.

"아야메, 안녕……."

아야메는 제비꽃색 리본을 흔들며 손에 든 '물망초 수첩'을 은밀하게 펼쳤다.

"어젯밤의 정황 증거, 체격, 그리고 그 은빛 머리카락…… 모든 걸 대조해 봤어. 요미 군이 괴도 미드나이트일 확률은―― 92퍼센트야."

"구, 92퍼센트!?"

"이봐 이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반장!"

옆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끼어든 사람은 소꿉친구 이누카이 타이가였다. 콧등의 반창고를 손가락으로 쓱 문지르며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전학생이 괴도일 리가 없잖아! 그 녀석 어제 비 오는 날 자전거도 못 타서 얼굴이 새빨개졌던 녀석이라고! 지붕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멋진 괴도가 장바구니 자전거도 못 탄다는 게 말이 되냐!"

"……그건 단순한 운동 신경의 편중이거나 트라우마일 가능성이 높아."

아야메가 냉정하게 반박했다.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어젯밤 옥상에서 가면 너머로 드러난 얼굴을 코하루도 똑똑히 보았잖아."

"으…… 응."

코하루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타이가의 말이 맞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때 손끝에 닿았던 얼음장 같은 감촉, 달빛 아래 크게 뜨였던 카나타의 서늘한 회청색 눈동자는 틀림없는 진짜였다.

"나…… 방과 후에 카나타 군에게 직접 물어볼래."

"뭐, 혼자서!?" 하고 타이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험해, 코하루." 아야메도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아. 카나타 군이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진짜 진심을 알고 싶은걸!"

코하루의 호박색 눈동자에 깃든 흔들림 없는 빛을 보고 아야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우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볼게. 절대로 무모한 짓은 하면 안 돼."

방과 후.

겨울의 짧은 해는 벌써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고, 차가운 그림자가 언덕 마을을 서서히 덮어갔다.

카나타는 종례 종이 울리자마자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코하루는 홀로 그 뒷모습을 뒤쫓았다.

카나타는 상점가를 가로질러 좁은 돌계단을 오르더니 쓰키미자카 맨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낡은 벤치가 놓인 공터였다.

"카나타 군!"

숨을 헐떡이며 부르자 카나타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짙은 감색 코트 재킷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차가운 회청색 눈동자로 코하루를 내려다보았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호시카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코하루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어젯밤…… 병원 옥상에 있었던 거 카나타 군이지? 괴도 미드나이트의 진짜 정체는…… 너인 거지?"

바람이 들이닥치며 카나타의 은빛 머리칼을 거칠게 뒤흔들었다.

카나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코트 안주머니에서 은빛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시곗바늘은 5시 정각을 가리킨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카랑, 코롱―― 또르르롱…….

온 마을의 스피커에서 오후 5시 차임벨이 울려 퍼졌다.

황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쿠구구구…… 낮게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나타의 발치에서 차가운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랐다.

카나타의 모습이 안개에 휩싸여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안개가 걷혔을 때 그 자리에 서 있던 것은―― 새까만 실크햇에 하얀 가면, 밤안개처럼 흩날리는 망토를 두른 모습이었다.

"괴도…… 미드나이트……!"

코하루는 숨을 훅 들이켰다.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변신에 심장이 요동쳤다.

코하루는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분실물\", 제가 전해 줄게요!"

"폿케, 가자!"

"맡겨달라폿케!"

"별 돋보기, 오픈!"

폿케가 빛이 되어 왼손에 감기며 새빨간 털실 장갑으로 변했다. 주황색 탐정 케이프, 별 베레모, 오른손에는 황동 별 돋보기.

노을빛 붉은 하늘과 검은 안개가 팽팽하게 맞부딪치는 전망대 위에서 두 사람은 정면으로 마주 섰다.

"……그래. 내가 괴도 미드나이트다."

하얀 가면 너머로 카나타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젯밤 같은 연극조의 정중한 말투가 아닌, 카나타 본연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였다.

"어째서……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어제 아야메의 엄마도, 미나의 장화도…… 추억을 빼앗긴 사람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카나타 군도 잘 알고 있잖아!"

"……알고 있어."

카나타는 회중시계를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내겐 이것밖에 없어. 추억을 백 개 모으면…… 내 잃어버린 기억과 내 가족을 돌려주겠다고 했거든."

"어……? 기억이랑, 가족을……?"

코하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5년 전 이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가면을 쓴 괴도는 저녁노을에 물든 바다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카나타'라는 것과 '요미'라는 성씨 외에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가족이 있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눈을 떴을 땐 멈춰 선 이 시계를 손에 쥔 채 황혼의 나라를 끝없이 헤매고 있었어."

"그럴 수가……."

"현실의 마을로 간신히 돌아왔지만 내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 마을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날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 마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모두가 날 잊어버리고 있었어!"

카나타의 외침은 처절한 비명과도 같았다.

은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하얀 가면 너머의 눈동자가 깊은 절망의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추억을 훔치고 있었던 거야?"

코하루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검은 안개의 주인…… 와스레나가 내게 거래를 제안했어. '인간의 가장 소중한 추억을 백 개 모아오면 너의 기억도, 너를 기억해 주는 가족도 전부 돌려주마'라고."

"그런 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코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남의 추억을 빼앗아 모은다고 해서 그게 진짜 행복일 리 없잖아! 추억을 빼앗긴 사람은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서 너무 슬퍼서 운단 말이야! 카나타 군도 어제 아야메의 엄마를 보면서 가슴 아파했잖아!"

"…………읏!"

"게다가 카나타 군은 언제나 추억의 물건을 되찾을 수 있는 힌트를 남겨주었어! 실은 추억 같은 거 빼앗고 싶지 않았던 거지!? 누군가 자길 멈춰 세워주기를 바랐던 거잖아!?"

카나타의 몸이 흠칫 떨렸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카나타는 명령에 따라 추억을 훔치면서도, 그 추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주인이 되찾을 수 있는 희미한 희망의 끈을 일부러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남의 추억을 훔치는 짓은 이제 그만둬!"

코하루는 양팔을 벌리며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내가 카나타 군의 소중한 기억을 찾아줄게! 우리 탐정단 모두가 카나타 군의 가족을 찾아줄게! 나 절대 포기 안 할 거니까!"

"……그만둬."

카나타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떨어졌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가족에게 사랑받고 따뜻한 빵집에서 자라 아무에게도 잊힌 적 없는 네가…… 내 고통을 대체 뭘 안다는 거야!"

"카나타 군……."

"너는 설령 무언가를 잊어버려도 마중 나와줄 사람이 있잖아! 널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잖아! ……하지만 내겐 아무도 없단 말이다!"

매섭게 소리치더니 카나타는 망토를 활짝 펼쳤다.

"내 일에 참견하지 마. 다음에 또 방해한다면…… 그땐 가차 없이 공격할 거다."

검은 안개가 폭발하듯 번져 나가며 괴도 미드나이트의 모습을 집어삼켰다.

"기다려, 카나타 군ーー!"

코하루가 손을 뻗었지만 손안에 잡힌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뿐이었다.

안개가 걷힌 전망대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코하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분함과 슬픔으로 눈물을 떨구었다.

"……코하루."

왼손에서 장갑이 스르르 빠져나오며 폿케가 둥실 떠올랐다.

폿케는 카나타가 사라진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왜 그래, 폿케……?"

"코하루…… 저 녀석이 떠나면서 망토를 펄럭였을 때,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랑 똑같은 냄새가 났다폿케……."

"어? 폿케랑 똑같은 냄새……?"

"응…… 오래된 빨간 털실의 따스한 햇살 냄새다폿케. 게다가 저 녀석 곁에 가면 역시나 내 털실이 끊어질 것처럼 찌릿찌릿 곤두선다폿케……!"

폿케는 가슴을 움켜쥐며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카나타의 주머니 속에 폿케와 같은 털실로 된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언덕 위 빈터에 어스름을 가르며 붉은 벽돌 양옥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이쇼 시대 기차역의 분실물 취급소―― '분실물의 관'이었다.

딸랑딸랑 문에 달린 종을 울리며 코하루, 아야메, 타이가 세 사람이 관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 카운터에서 등꽃색 머리에 화살깃 무늬 기모노, 자주색 하카마를 입은 여성―― 관장 시오리 씨가 일행을 맞아주었다.

"어머나, 여러분. 차가운 바람을 뚫고 잘 오셨어요."

시오리 씨는 따뜻한 홍차와 갓 구운 과자를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차려주었다.

"맛있어 보이는 쿠키다폿케~!" 하고 폿케가 곧장 접시로 뛰어들었고, 타이가도 "맛있다!" 하며 입안 가득 베어 물었다.

하지만 코하루와 아야메는 홍차에 손도 대지 못했다.

코하루는 전망대에서 카나타에게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시오리 씨에게 털어놓았다.

카나타가 5년 전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렸다는 것.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잊혀 홀로 외톨이가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가족을 되찾기 위해 추억을 백 개 모으는 괴도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시오리 씨는 둥근 안경 너머 눈동자를 떨구며 깊고 가슴 아픈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랬군요."

"시오리 씨, 무언가 알고 계신가요?"

아야메가 몸을 앞으로 바짝 기울였다.

시오리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한 발걸음으로 관 안쪽 깊은 곳―― 육중한 철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에는 굵은 쇠사슬이 몇 겹이고 칭칭 감겨 있었고 커다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여기는……?"

"지하 창고랍니다."

시오리 씨는 슬픈 손길로 쇠사슬을 어루만졌다.

"이 분실물의 관에는 백 년 동안의 분실물이 잠들어 있어요. 하지만…… 그중에는 아무리 오랜 세월을 기다려도 끝내 주인이 데리러 오지 않았던 물건들도 수없이 많답니다."

시오리 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마중 나오지 않은 물건들의 끝없는 외로움, 슬픔, 어둠…… 그것들이 백 년의 세월 동안 지하 창고에 켜켜이 쌓여 하나의 괴물―― 저의 그림자인 '와스레나'를 낳고 말았어요."

"시오리 씨의…… 그림자……!?"

코하루는 숨을 들이켰다.

"와스레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면 더 이상 잃어버리고 슬퍼할 일도 없다'는 것…… 카나타 군을 조종해 사람들의 추억을 빼앗게 하는 것도 분명 와스레나의 짓이겠지요."

"말도 안 돼…… 그럼 백 개가 다 모이면 어떻게 되는데요!?"

타이가가 소리쳤다.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바로 그때였다.

끼기긱……!

덜컹덜컹덜컹!

지하 창고 문에 감겨 있던 굵은 쇠사슬이 안쪽에서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타이가가 화들짝 뒤로 물러섰고 폿케는 코하루의 케이프 속으로 다이빙했다.

육중한 철문 틈새로 살을 에는 듯 시린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안개 깊숙한 곳, 푸르고 차갑게 빛나는 무수한 물망초 꽃들이 어둠 속에서 불길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후후후…… 아하하하……』

여러 소녀와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인 듯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성이 지하 밑바닥에서 울려 퍼졌다.

『……이제 곧이야…… 앞으로, 서른 개……』

『백 개의 추억이 모두 모일 때…… 이 마을은 영원히 고통 없는 아름다운 망각의 잠에 빠질 것이다……』

서늘한 냉기가 발목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라 아야메는 숨을 죽이며 수첩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앞으로, 서른 개……! 카나타 군은 벌써 일흔 개나 되는 추억을 모아버린 거였어……!"

사슬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고 검은 안개가 서서히 문 너머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남겨진 공기의 냉기는 한겨울 밤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코하루 일행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카나타 군……."

코하루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앞으로 서른 개가 더 모인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카나타 군을 와스레나의 깊은 어둠 속에서 반드시 구해내야 한다――.

차가운 결의가 코하루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조그만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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