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비 오는 날의 짝 잃은 장화
차가운 비가 언덕 마을을 잿빛으로 적시고 있었다.
11월 중순을 넘긴 쓰키미자카 마을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올 만큼 추웠다.
"우와앗, 웅덩이가 너무 깊잖아! 운동화에 물 다 들어갔어~!"
호시카와 코하루는 노란색 레인 케이프 자락을 붙잡고 물웅덩이를 껑충 뛰어넘었다. 얇게 땋아 내린 머리가 흔들리며 별 모양 헤어핀이 반짝 빛났다.
그때 가슴팍 주머니가 꼬물꼬물 움직였다.
"코하루, 너무 흔들린다폿케! 어지러워 죽겠다폿케~!"
고개를 불쑥 내민 것은 손바닥만 한 빨간 털실 뭉치―― 말하는 장갑 츠쿠모가미, 폿케였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 목도리를 파르르 떨며 케이프 안쪽으로 쏙 파고들었다.
"미안, 미안해.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빗줄기가 더 굵어지는걸."
코하루가 언덕길을 총총걸음으로 내려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흑…… 흐아아앙……!"
상점가 입구 앞 오래된 버스 정류장 처마 밑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노란 유치원 모자를 쓴 어린 여자아이가 벤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 발치를 보고 코하루는 숨을 들이켰다. 오른쪽 발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장화가 신겨져 있었지만, 왼쪽 발은 빗물을 흠뻑 머금은 하얀 딸기 무늬 양말 차림이었다.
"아가, 왜 그러니? 발 시리지 않아?"
달려가려던 바로 그 순간, 옆에서 불쑥 커다란 검은 우산 하나가 쑥 내밀어졌다.
"……우산, 써."
낮고 조용한 목소리. 올려다보니 은빛 머리칼을 비에 적신 소년이 우뚝 서 있었다. 짙은 감색의 긴 코트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회청색 눈동자로 어린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요미 군!"
5학년 2반 전학생 요미 카나타였다. 누구와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말을 걸어도 "……딱히"라는 말만 내뱉던 얼음장 같던 아이가, 제 한쪽 어깨를 비에 흠뻑 적시며 아이를 향해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어라, 어쩐 일이야 여기에?"
"……딱히.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
카나타는 시선을 홱 돌렸지만 우산을 뻗은 손은 조금도 거두지 않았다.
어린 여자아이는 딸꾹질을 하며 울먹였다.
"미나 장화가…… 없어졌어요…… 언덕 위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장화 한 짝만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가 버려서……."
"엄마는 같이 안 계셔?"
코하루가 다정하게 묻자 미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는 병원에 계셔요. 입원하시기 전에 사 주신 건데…… '비 오는 날에도 물웅덩이를 퐁퐁 뛰어넘으면서 씩씩하게 있어야 해'라고 하셨는데…… 미나의 보물인데……!"
작은 주먹이 추위와 슬픔으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엄마와의 소중한 약속이 담긴 장화. 그 말을 듣는 순간 코하루의 가슴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늘 물건을 잃어버리는 코하루였기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그 서러움과 외로움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걱정 마, 미나야! 언니 오빠들이 꼭 찾아서 전해 줄게!"
코하루는 깨끗한 수건을 꺼내 미나의 젖은 발을 감싸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함부로 '꼭'이라는 말 쓰지 마."
카나타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배수로에 빠져 쓸려 내려갔다면 이미 바다까지 흘러갔을지도 몰라."
"바다까지 가게 내버려둘까 봐! 엄마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장화란 말이야. 분명 미나 곁으로 꼭 돌아오고 싶어 하고 있을 거라고!"
카나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바로 그때 주머니 속의 폿케가 부르르 떨었다.
(찌릿찌릿…… 찌릿찌릿……!)
"히익, 코하루! 털실이 찌릿찌릿 곤두선다폿케!"
카나타 곁에만 가면 언제나 폿케의 털실이 반응하곤 했다. 코하루는 카나타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
"요미 군도 도와줘! 우산까지 씌워준 걸 보면 실은 다정한 애잖아!"
"……멋대로 넘겨짚지 마."
카나타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지는 않았다.
"야아, 코하루ーー!"
언덕 위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온 것은 소꿉친구 이누카이 타이가였다. 콧등에 반창고를 붙이고 손에는 종이봉투를 달랑달랑 들고 있었다.
"정육점에서 갓 튀긴 고로케 열 개나 사 왔다고! ……어라, 근데 왜 전학생 녀석이 같이 있냐?"
"……너랑 상관없어."
"뭐라고오오!?"
"그만해, 이누카이 군."
남색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온 사람은 학급 반장 구조 아야메였다. 손에는 제비꽃색 '물망초 수첩'이 들려 있었다.
"호시카와 양, 또 무슨 일 생긴 거야?"
코하루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아야메는 수첩을 펼치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계단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물의 흐름을 계산해 보면 경로는 세 가지로 좁혀져."
"역시 아야메야!"
"다, 당연한 분석인걸. 그것보다…… 폿케(짱)…… 비 때문에 춥진 않을까……."
아야메는 케이프 틈새로 고개를 내민 폿케를 보고 사르르 녹아내릴 뻔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서둘러야 해."
"좋았어, 내 자전거로 찾아보자!"
타이가가 제 산악자전거를 가리켰다.
"코하루는 뒤에 타고! 전학생, 넌 저쪽에 있는 예비용 장바구니 자전거――"
"거절한다."
카나타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가느다란 두 개의 고무바퀴 위에 올라타 불안정한 균형을 사람의 힘으로 유지하다니, 지극히 비합리적인 이동 수단이야. 난 안 타."
"하아!? 대체 그 말본새는 뭐야!"
하지만 코하루는 놓치지 않았다. 카나타가 자전거 페달을 마치 맹수라도 보듯 지극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요미 군, 혹시 자전거 못 타?"
카나타의 눈썹이 홱 치켜 올라갔다.
"……읏! 누, 누가 못 탄다고 그래! 필요가 없으니까 안 탈 뿐이야!"
카나타의 새하얀 뺨이 귓바퀴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
"정곡을 찔렸다폿케! 얼굴이 문어처럼 새빨갛다폿케~!"
"푸하하하! 진짜냐!? 그렇게 폼은 다 잡고 다니면서 자전거도 못 탄다고!?"
타이가가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고 아야메도 입을 가린 채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웃지 마, 털 뭉치!"
카나타는 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홱 돌아선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장화 찾으러 갈 거잖아. 따라와."
"앗, 같이 가!"
코하루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뒤를 쫓았다. 차가운 빗속에서도 가슴속이 포근하게 데워졌다. 얼음장 같던 요미 군의 귀여운 약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찾는 건데?" 하고 타이가가 묻자, 카나타는 상점가 뒤편의 좁은 돌계단을 가리켰다.
"낡은 배수로는 뒷산의 옛 수로로 연결되어 있어. 물살의 속도로 보아 가벼운 고무장화라면 거기까지 휩쓸려 내려갔을 거다."
"어떻게 그런 지름길을 다 알고 있어?"
코하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카나타는 나직이 읊조렸다.
"……예전에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을 뿐이야."
그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계단을 묵묵히 내려갔다. 마을로 전학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예전이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고개를 갸우뚱하던 바로 그 순간 온 마을에 오르골 선율이 울려 퍼졌다.
카랑, 코롱―― 또르르롱…….
"저녁 5시 차임벨……!"
황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쿠우우우웅…….
빗방울이 공중에서 잠시 멈추더니 저녁노을빛을 반사하며 황금빛 모래알처럼 반짝였다.
『……추워…… 미나야…… 어디 있어……?』
빗소리 틈새로 작게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 미나의 장화 목소리야!"
코하루는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목청을 높였다.
"그 \"분실물\", 제가 전해 줄게요!"
가슴 주머니에서 폿케가 퐁 솟아올랐다.
"폿케, 가자!"
"맡겨달라폿케!"
"별 돋보기, 오픈!"
폿케가 빛의 알갱이가 되어 코하루의 왼손에 쏙 감기며 새빨간 털실 장갑으로 변했다. 손등 위에 눈이 깜빡 열렸다.
코하루의 케이프는 선명한 주황색으로, 머리에는 별 베레모, 오른손에는 황동 '별 돋보기'.
"분실물 탐정, 호시카와 코하루! 준비 완료!"
카나타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코하루는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바닥 위에 붉게 빛나는 '기억의 실'이 선명하게 떠올라 녹슨 쇠창살이 박힌 옛 수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기야! 옛 수로 안쪽!"
코하루는 쇠창살 틈을 빠져나가 지하 수로로 뛰어들었다.
"기다려, 코하루!" "잠깐, 너희 둘 다!"
타이가와 아야메, 그리고 카나타까지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하 수로에는 빗물이 소용돌이치며 곰팡이와 진흙 냄새가 자욱했다. 벽에는 푸른 이끼가 빈틈없이 자라나 있었다.
"으악, 너무 어두워……! 난 유령 쪽은 전공이 아니라고!"
타이가가 코하루의 등 뒤에 매달려 이를 딱딱 마주쳤다.
바로 그때 수로 깊은 곳에서 기괴한 땅울림이 울려 퍼졌다.
철퍽, 철퍽, 철퍽, 철퍽……!
"나왔다폿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안개에 휩싸인 거대한 그림자였다.
수십 켤레의 짝 잃은 운동화와 샌들들이 검은 안개의 띠로 지네처럼 엮여 꿈틀거리며 기어오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빨간 장화 한 짝이 붙잡혀 있었다.
"노라모노야!" 하고 아야메가 외쳤다.
"주인이 마중 나오지 않아 버려진 신발들의 슬픔이 뭉쳐 폭주하고 있는 거야!"
크르르르르릉!
신발 괴물이 동그란 눈을 붉게 번뜩이며 돌진해 왔다!
"으아아악! 받아라, 갓 튀긴 특제 고로케에에엣!"
타이가가 종이봉투에서 고로케를 냅다 집어 던졌지만 괴물의 발치에 철퍼덕 떨어졌을 뿐이었다.
"신발이 고로케를 먹을 리가 없잖아!"
"던질 게 이것밖에 없단 말이야!"
"호시카와 양, 한가운데의 빨간 장화가 심장부야! 저걸 떼어내면 풀릴 거야!"
"알았어! 폿케, 점프!"
코하루가 턱을 딛고 힘차게 도약하려던 바로 그 순간―― 찌르르 미끄덩!
발밑의 미끄러운 이끼에 발이 걸려 거센 탁류 속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코하루ーー!"
수면이 눈앞에 닥쳐와 질끈 눈을 감은 찰나―― 덥석!
강한 힘이 코하루의 오른쪽 손목을 단단히 낚아챘다.
"……허술하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카나타가 쇠 파이프를 한 손으로 끌어안은 채 온 힘을 다해 코하루를 끌어올려 주었다.
철퍼덕 발판 위로 쓰러지며 두 사람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코하루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손목을 잡고 있던 카나타의 손이 한겨울의 얼음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던 것이다.
(어째서……? 왜 이렇게 손이 차가운 거지……?)
카나타는 시선을 눈치채자마자 허둥지둥 손을 등 뒤로 숨겼다.
"……다친 덴 없지."
"응, 응……! 고마워, 요미 군!"
크아아아악! 괴물이 다시금 덮쳐왔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폿케, 별 돋보기 출력을 최대로 올리자!"
"라져폿케! 기억의 실, 풀 파워다폿케!"
코하루는 별 돋보기를 겨누고 빨간 장화를 똑바로 응시했다.
황동 렌즈 너머로 은은한 빛이 피어올랐다.
장화가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하얀 병실 침대. 다정한 미소를 짓는 젊은 엄마가 어린 미나의 발에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장화를 신겨주고 있었다.
『미나야, 귀여운 딸기처럼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엄마, 빨리 나가서 뛰어놀고 싶어요!』
『비 오는 날에도 물웅덩이를 퐁퐁 뛰어넘으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있어야 해. 엄마가 병원 창문으로 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엄마의 따뜻한 손이 장화 표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물웅덩이를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넘던 미나의 행복했던 나날들.
(너는 줄곧 미나의 환한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던 거구나……!)
코하루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수로 가득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찾았다. ――어서 와, 분실물아!"
키이이이잉……!
별 돋보기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물결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며 괴물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검은 안개가 스르르 풀리고 수십 켤레의 신발들이 공중으로 사뿐히 떠올랐다. 진흙이 말끔히 씻겨나간 신발들은 기분 좋게 탭댄스를 추듯 스텝을 밟더니 빛의 알갱이가 되어 마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퐁.
코하루의 두 손바닥 위로 앙증맞은 빨간 장화 한 짝이 떨어져 내렸다.
"돌아왔다폿케……!" 폿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냈구나, 코하루!" 타이가가 환호했고 아야메도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돌아보니 수로 출구에 우뚝 서 있던 카나타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차갑던 옆모습에 얼음이 녹아내리듯 희미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전해지는구나. 정말로."
그 나직한 읊조림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따스한 울림을 품고 있었다.
비는 개어 있었고 구름 사이로 붉은 저녁노을빛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의 미나는 빨간 장화를 보자마자 가슴에 와락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의 장화……!"
양말 신은 발에 장화를 쏙 꿰어 신고는 빗물 웅덩이를 힘차게 퐁 뛰어올랐다.
"뛰었어요! 언니, 오빠들, 고마워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미나를 배웅하고 카나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산을 접고 있었다. 코하루는 다가가서 말했다.
"고마워, 카나타 군!"
"……어?"
카나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카나타 군, 이라니……."
"그야 같이 찾아줬고 날 구해줬잖아! 이제 '요미 군' 같은 남 같은 호칭은 어색해. 탐정단 동료인걸, 카나타 군!"
코하루가 활짝 웃자 카나타는 쑥스러운 듯 머플러로 입가를 가렸다.
"……동료가 된 기억은 없어."
"그렇게 손발이 척척 맞았으면서!"
"……호시카와."
카나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눈동자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너는 왜 남의 분실물에 그렇게까지 목숨을 거는 거지?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남의 추억을 찾아다니는 거야."
가슴을 후벼 파는 애절한 물음이었다. 코하루는 노을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건 말이지, 카나타 군. 분실물은 분명 줄곧 기다리고 있거든."
"……기다린다고?"
"응. 어둡고 춥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주인이 자기를 데리러 와주기를 굳게 믿으며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 데리러 가주고 싶은 거야. 아무도 마중 나와주지 않는 건 너무 슬프잖아."
"…………읏!"
카나타가 숨을 훅 들이켰다. 회청색 눈동자가 사납게 흔들리며 코트 안주머니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그 안쪽에는 오래된 한 짝의 빨간 털실 장갑이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코하루는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너는 참 물러 터졌어."
카나타는 등을 돌렸다.
"마중 같은 건 오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그 말을 남긴 채 카나타는 노을 지는 언덕길을 혼자서 쓸쓸히 걸어 내려갔다.
"카나타 군……?"
폿케가 코하루의 귓가에서 나직이 속삭였다.
"코하루…… 저 녀석한테서 역시나 엄청 외로운 냄새가 났다폿케……."
그날 밤.
차가운 칼바람이 불어 닥치는 쓰키미자카 언덕 위 구조 아야메의 집 앞.
병원 근무를 마친 엄마, 구조 레이코 의사가 대문을 열려던 순간 우편함에 꽂혀 있는 칠흑 같은 카드 한 장을 발견했다.
차가운 달빛 아래 은빛 글씨가 떠올랐다.
『오늘 밤, 구조 레이코 님의 "가장 소중한 추억"을 받아 가겠습니다. ――괴도 미드나이트』
내일 12월 1일은―― 구조 아야메의 열한 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