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전학생은 멈춘 시계
"모두 자리에 앉으렴. 오늘은 새로운 친구를 소개할게요."
화요일 아침 조회 시간. 담임 모리 선생님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자, 5학년 2반 교실이 웅성웅성 술렁이기 시작했다.
드르륵 앞문이 열리며 한 남자아이가 걸어 들어왔다.
교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칼. 겨울 아침 호수처럼 차갑고 맑은 회청색 눈동자. 짙은 감색의 긴 재킷에 목에는 깊은 푸른색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꺄악, 잘생겼다……."
"모델 같아……!"
앞자리의 여자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소곤거렸다.
남자아이는 칠판 앞에 서더니 분필을 집어 들었다. 망설임 없는 반듯한 글씨로 『요미 카나타』라고 적었다.
"요미입니다."
그게 전부였다.
10초를 기다려도, 20초를 기다려도 다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 음, 요미 군은 먼 마을에서 이사를 왔단다. 다들 사이좋게 지내렴. 자리는…… 호시카와 양 옆자리가 비어 있네. 창가 쪽 맨 뒤에서 두 번째 자리란다."
"네."
요미 군은 짧게 대답하고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코하루 바로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더니 창밖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역시!)
코하루는 숨을 훅 들이켰다.
어제저녁, 분실물의 관 지붕 위에 우뚝 서 있던 바로 그 은발의 소년이었다. 서늘한 옆모습도, 바람을 두른 듯한 묘한 분위기도 그때 보았던 그대로였다.
"저, 저기…… 난 호시카와 코하루야! 잘 부탁해, 요미 군!"
용기를 내어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보았다.
요미 군은 천천히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차가운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딱히."
"어?"
"잘 부탁할 필요 없어.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마."
딱 잘라 차갑게 내뱉고는, 그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뭐, 뭐야 저 녀석! 싹수가 노랗잖아!"
앞자리에서 타이가가 몸을 홱 돌려 끼어들었다.
"야, 전학생! 코하루가 모처럼 사근사근 인사해 줬는데 그 태도는 대체 뭐냐! 난 5학년 2반의 캡틴 이누카이 타이가 님이시다!"
"……시끄러워. 개처럼 짖지 마."
"개, 개라고오오오!? 난 호랑이라고! 옥상으로 따라나와ーー…… 끄아악!?"
타이가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순간, 책상 모서리에 발가락을 세게 찧고는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야야야…… 새끼발가락…… 내 황금의 오른발 새끼발가락이이이익!"
"정말, 타이가 넌 또 왜 그래!"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된 가운데, 오직 요미 군만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코하루의 책상 옆에 걸어둔 책가방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코, 코하루……!』
가방 덮개 틈새로 빨간 털실 방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폿케였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나도 갈 거다폿케! 멜론빵 냄새가 난다폿케!"라며 가방 속으로 쏙 기어들어 왔던 것이다.
『코하루…… 왠지 저 녀석 곁에 가면 내 털실이 찌릿찌릿 곤두선다폿케……!』
"찌릿찌릿……? 정전기야?"
『아니다폿케! 털실이 콕콕 잡아당겨지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다폿케…… 저 녀석, 그냥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폿케……!』
폿케는 경계하듯 까만 눈을 가늘게 뜨고 요미 군의 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2교시 음악 시간.
음악실로 이동하자, 피아노 앞에 서 계신 모리 선생님이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며 악보 선반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하고 계셨다.
늘 나긋나긋하고 상냥하던 모리 선생님의 눈썹이 곤란한 듯 잔뜩 처져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학급 반장인 구조 아야메가 번쩍 손을 들고 물었다.
"아, 구조 양…… 실은 말이지, 줄곧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악보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서."
"악보요……?"
"응. 내가 어릴 적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인 타치바나 선생님께서 손수 적어 주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악보란다. 내가 피아노를 아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소중한 추억의 곡이라…… 오늘 수업 시간에 너희에게 들려주려고 했는데."
모리 선생님은 슬픈 표정으로 피아노 건반을 살며시 쓸어내리셨다.
가슴이 콕콕 찔리듯 아팠다.
어제의 비녀와 똑같았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정말이지 너무 쓸쓸한 일이다.
코하루는 왼손을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곳에는 별 돋보기가 소중히 담겨 있었다.
"모리 선생님, 제가 방과 후에 찾아볼게요!"
"어머, 고마워라, 호시카와 양.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렴."
방과 후. 저녁 바람이 조금씩 쌀쌀해질 무렵.
코하루와 타이가, 그리고 "사건의 냄새가 나는걸"이라며 노트를 펼쳐 든 아야메는 상점가 입구에 다다랐다.
그런데 상점가 한가운데에 있는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저게 뭐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어!"
타이가가 먼저 쏜살같이 달려갔다.
마을 소식이나 안내문이 붙는 나무 게시판. 그 한가운데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까만 카드가 압정으로 꽂혀 있었다.
트럼프 카드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카드 위에, 은빛 잉크로 우아한 글씨가 춤추듯 적혀 있었다.
"이것 좀 보렴."
아야메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카드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오늘 밤, 당신의 "가장 소중한 추억"을 받아 가겠습니다. ――괴도 미드나이트』
"괴도…… 미드나이트!?"
코하루와 타이가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게! 만화 찍냐! 우리 동네에 괴도가 나타날 리가 없잖아!"
"장난치고는 묘하게 공이 많이 들어갔어."
아야메는 가죽 표지 추리 노트에 만년필을 사각사각 놀렸다.
"트럼프 카드의 재질은 특수 주문 제작된 고급 종이야. 은빛 잉크에서는 옅은 밤안개 향기가 풍겨. 단순히 아이들이 친 장난으로 보이지 않아."
괴도 미드나이트.
추억을 훔치는, 괴도……?
그 말을 들은 순간, 주머니 속의 별 돋보기가 찌르르하고 희미한 열기를 띠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뎅, 뎅, 뎅…….
오후 5시의 저녁노을 차임벨이 언덕 마을에 울려 퍼졌다.
하늘이 주홍빛에서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깜빡이기 시작했다.
"아, 5시다! 모리 선생님, 아직 학교에 남아서 악보 찾고 계신다고 했잖아!"
"나, 잠깐 가보고 올게! 괴도가 나타나면 내 강력 슛 킥으로 날려버릴 테다!"
"기다려, 이누카이 군! 단독 행동은 위험해!"
아야메와 타이가가 학교를 향해 달려나갔다.
코하루도 뒤따라 달려가려던 바로 그 순간.
『……서늘해…… 어두워……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귓속 깊은 곳에서 사각사각 종이가 스치는 듯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보의 목소리……!?"
주머니에서 폿케가 퐁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코하루! 학교 음악실 쪽에서 엄청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폿케!』
"서두르자, 폿케!"
노을빛이 스러져가는 학교 건물은 낮과는 전혀 다른 생물처럼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 2층 음악실 문을 벌컥 열었다.
끼이익……
음악실 안은 붉은 노을빛과 짙은 어둠으로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피아노 앞에 모리 선생님이 멍하니 홀로 앉아 계셨다.
하지만 그 바로 앞에는――.
새까만 실크햇에 새하얀 가면.
밤안개처럼 옷자락이 흩날리는 칠흑빛 망토를 두른 소년이 우뚝 서 있었다.
"누, 누구야……!?"
코하루의 외침에 가면을 쓴 소년이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가면 틈새로 보이는 차가운 회청색 눈동자. 목에는 어디서 많이 본 깊은 푸른색 머플러.
(요미 군……!? 거짓말이지……!?)
괴도는 아무런 말도 없이 모리 선생님의 가슴팍을 향해 새하얀 장갑을 낀 손을 스윽 뻗었다.
슈르르르륵……!
모리 선생님의 가슴에서 은은한 빛의 알갱이들이 빨려 나왔다.
빛은 괴도의 손바닥 안에서 동그랗게 뭉쳐지더니, 이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머금은 까만 유리구슬―― 『망각의 구슬』로 변했다.
"어…… 라……?"
모리 선생님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스르르 사라지며 멍하니 건반을 바라보셨다.
"내, 내가…… 왜 여기에 앉아 있는 거지……? 피아노 같은 건…… 내가 왜 치고 있었더라……?"
"모리 선생님!"
코하루는 소리를 지르며 피아노 앞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선생님의 추억을 돌려줘!"
괴도 미드나이트는 가면 너머로 조용히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밤의 추억, 확실히 받아 가지."
차갑고 맑으면서도 연극조의 정중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되찾고 싶다면―― 그 추억이 깃든 물건을 찾아내는 거다."
"어……?"
괴도는 그 말을 남기고 손안에 쥐고 있던 까만 망각의 구슬을 어째서인지 피아노 보면대 위에 또르르 남겨두었다.
그리고는 사뿐히 망토를 휘날렸다.
시커먼 밤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더니, 괴도의 모습은 황혼의 창밖으로 녹아들듯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버렸다폿케……! 뭐, 뭐였냐폿케, 저 녀석은……!?"
폿케가 코하루의 어깨 위에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면대 위에는 까맣게 탁해진 유리구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손을 살짝 대자 가슴이 찌릿하게 저려오는 듯한 애틋하고 시린 차가움이 전해졌다.
"이게 모리 선생님의 추억이야…… 어서 악보를 찾아서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해!"
모리 선생님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꿈을 꾸듯 멍하니 계셨다.
코하루는 왼손을 앞으로 곧게 뻗었다.
"그 \"분실물\", 제가 전해 줄게요!"
"맡겨달라폿케!"
폿케가 코하루의 왼손으로 퐁 뛰어들어 쏙 끼워졌다. 손등 위에 따스한 폿케의 얼굴이 떠올랐다.
"별 돋보기, 오픈!"
키이이잉――!
별 돋보기가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며 빛의 입자들이 코하루를 부드럽게 감쌌다.
노을빛 주황색 탐정 케이프에 별 단추, 머리에는 베레모.
코하루는 별 돋보기를 들고 음악실 안을 차분히 둘러보았다.
『……여기야…… 어두워…… 피아노 곁으로 가고 싶어……』
별 돋보기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자, 음악실 안쪽―― 음악 준비실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붉은빛 줄기가 아지랑이처럼 하늘하늘 뻗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쪽이야!"
준비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곳에는 쓰지 않게 된 낡은 풍금과 큰북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붉은빛은 낡은 풍금 뒤편, 불과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틈새로 쏙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풍금 뒤야! 폿케, 잡아당기는 것 좀 도와줘!"
"맡겨달라폿케!"
두 사람은 끙차, 끙차 힘을 모아 무거운 옛날 풍금을 앞으로 조금 밀어냈다.
틈새로 손을 쑥 집어넣자 손끝에 거칠거칠한 종이의 감촉이 닿았다.
조심스럽게 꺼낸 것은 여러 장의 오선지가 실로 꼼꼼하게 묶인 오래된 손글씨 악보였다.
표지에는 다정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석양 지는 언덕길에서 ――너무나 사랑하는 모리 양에게, 타치바나』
"찾았다……!"
악보를 손에 쥔 순간, 폿케가 외쳤다.
"코하루, 어서 모리 선생님한테 가자폿케! 황혼의 시간이 끝나버린다폿케!"
음악실로 단숨에 달려갔다.
코하루는 모리 선생님의 차가워진 두 손 위에 살며시 손글씨 악보를 쥐여 드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보면대 위의 까만 망각의 구슬을 집어 악보 가까이 살포시 가져갔다.
"찾았다. ――어서 와, 분실물아!"
코하루는 별 돋보기를 치켜들고 다정하게 외쳤다.
"모리 선생님, 기억해 내세요……! 선생님의 소중한 피아노 추억을!"
화아아악……!
악보와 까만 구슬이 맞닿은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탁하게 어두웠던 유리구슬 밑바닥에서 작은 불빛이 퐁 하고 켜졌다.
시커먼 색이 순식간에 투명해지더니, 마치 아침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구슬로 변해갔다.
짤랑, 부드러운 빛의 소리와 함께 구슬이 톡 깨어지며 수많은 금빛 알갱이가 되어 모리 선생님의 가슴속으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
모리 선생님의 눈동자에 따스한 빛이 다시 돌아왔다.
손안의 악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선생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타치바나 선생님……의 악보…… 기억났어요……! 나, 선생님께서 쳐 주시던 이 곡이 너무나 좋아서 피아노를 시작했던 거였어……!"
모리 선생님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리셨다.
도롱……
조용한 음악실에 맑고 고운 음 하나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포근하고 어딘가 그리운 멜로디가 부드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멜로디를 들은 순간, 코하루와 폿케는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 노래……!"
"저녁노을 차임벨 노래다폿케……!"
그랬다. 매일 오후 5시마다 온 마을에 울려 퍼지던 그 오르골 같은 선율.
모리 선생님의 은사이신 타치바나 선생님께서 이 쓰키미자카 마을을 위해 지어 주신 곡이었던 것이다.
붉은 노을빛이 감도는 교실 안에 따스한 음악이 가득 차올랐다.
모리 선생님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며 코하루의 가슴 깊은 곳도 훈훈하게 데워졌다.
(하지만…… 왜 괴도 미드나이트는 망각의 구슬을 그대로 두고 간 걸까……?)
추억을 훔치겠다고 하면서도, 마치 코하루 일행에게 추억을 찾아내 달라고 이끄는 것만 같았다.
학교를 나설 무렵에는 어느덧 짙은 어둠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언덕길 가로등이 발밑을 노랗게 비추었다.
문득, 언덕길 중간 좁은 골목길 안쪽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발걸음을 멈추고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감색 머플러를 두른 요미 군이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자, 미코. 빵 테두리야. 먹어."
요미 군의 발치에 작은 삼색털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삼색 고양이―― 미코는 기분 좋게 목을 골골 울리며 요미 군이 내민 빵을 정신없이 받아먹었다.
요미 군의 손이 미코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낮에 보여주었던 얼음장 같은 표정과는 전혀 다른, 온화하고 어딘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쓸쓸한 옆모습.
그의 왼손에는――.
달빛을 받아 은빛 회중시계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시계판의 바늘은 5시 정각을 가리킨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요미 군…… 너는 정말로…… 대체 누구인 거야……?)
찰칵, 밤바람 속에서 작은 금속음이 나직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