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저녁노을 차임벨과 말하는 장갑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진짜 대박 큰일 났다아아앗!"
십일월 첫째 주 월요일. 언덕 위 푸른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를 듯한 비명과 함께, 호시카와 코하루는 계단을 쿵쾅쿵쾅 뛰어내려 가고 있었다.
양말은 오른쪽이 노란색, 왼쪽이 물방울무늬. 머리는 오른쪽만 허겁지겁 땋아 내려서 끝부분이 삐죽 솟아 있었다. 가장 아끼는 노란색 레인 케이프 주머니에는 주워 모은 도토리와 병뚜껑이 가득 들어차 달릴 때마다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코하루, 또 늦잠 잤니?"
1층 빵 공방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하루네 집은 쓰키미자카 언덕길 중간에 있는 '호시카와 베이커리'.
가게 앞에는 갓 구운 달콤한 버터와 밀가루의 구수한 냄새가 포근하게 감돌고 있었다. 엄마 나츠미가 웃으며 쟁반을 정돈하고, 안쪽에서 아빠 히로시가 갓 구워 따끈따끈한 멜론빵을 종이 봉투에 담아 건네주었다. 빵 표면의 쿠키 반죽 위에 묻은 설탕 알갱이가 반짝반짝 빛났다.
"고마워요,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코하루는 종이 봉투를 입에 물고 책가방을 고쳐 맨 뒤 가게를 뛰쳐나갔다.
쓰키미자카 마을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마을이다.
가파른 돌계단을 운동화로 탁탁 박차며 뛰어내려 간다. 바닷바람에 케이프 자락이 펄럭이고, 짭조름한 갯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야아, 코하루!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빵을 입에 물고 뛰는 녀석이 어디 있냐!"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초록색 축구 유니폼을 입은 소꿉친구 이누카이 타이가가 자전거 페달을 서서 밟으며 쫓아오고 있었다. 콧등에는 언제나처럼 새하얀 반창고.
"시끄러워! 타이가야말로 얼른 옷이나 갈아입고 오지 그래!"
"아침 연습 끝난 직후라 괜찮다고! 난 미래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란 말이야! 으악, 돌멩이가―― 끄아악!?"
타이가는 자전거 손잡이에서 한 손을 떼는 순간, 바퀴가 작은 돌멩이에 걸려 산울타리로 곤두박질쳤다. 나뭇잎이 요란하게 흩날리며 엉덩이부터 화단에 처박혔다.
"괘, 괜찮아!?"
"아, 아야야…… 난 무적의 스트라이커니까 이 정도는 긁힌 상처에 불과해……."
머리에 나뭇가지를 꽂은 채 허세를 부리는 타이가의 모습이 너무 우스워 코하루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 손 잡아! 지각하겠어!"
두 사람은 허둥지둥 언덕길을 내달려 예비령이 끝나기 딱 10초 전에 교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호시카와 양."
자리에 앉기도 전에 차갑고 맑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윤기 흐르는 검은 생머리에 제비꽃색 리본. 5학년 2반 학급 반장, 구조 아야메였다. 손에는 가죽 표지의 추리 노트와 만년필이 쥐어져 있었다.
"등교 시각 8시 14분 50초. 세이프이기는 하지만 매우 위험한 시각이야. 그리고 이것 좀 보렴."
아야메가 펼친 노트에는 꼼꼼하고 반듯한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리코더, 수학 익힘책, 급식 주머니, 체육 모자…… 이번 달에만 잊어버리고 온 물건이 벌써 일곱 건.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할 기세야. 분실물은 마음이 해이해졌다는 증거야. 좀 더 똑 부러지게 행동하렴."
"으윽…… 미안해…… 앞으론 조심할게……."
"반성하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어서 자리에 앉아. 모리 선생님 오신다."
아야메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앞을 향해 돌아앉았다.
방과 후. 저녁노을이 온 마을을 주홍빛으로 물들일 무렵.
코하루와 타이가는 '쓰키미자카 긴자' 상점가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전봇대에는 『12월 15일 전통의 쓰키미자카 겨울 축제 감주와 군고구마 축제』라는 알록달록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야, 아까 시험 볼 때 네 리코더에서 이상한 소리 나더라."
"으으, 급하게 뛰어가느라 숨이 차서 삑~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난 거란 말이야!"
"개구리 우는 소리 같아서 웃음 터질 뻔했다니까!"
호탕하게 웃는 타이가 옆에서 코하루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화과자점 '아메야' 앞에서 가게 주인인 치요 할머니가 돌바닥에 주저앉아 땅바닥을 손으로 더듬고 계셨다.
"치요 할머니, 왜 그러세요? 뭐 떨어뜨리셨어요?"
"아이고, 코하루로구나…… 비녀가 도통 보이질 않는단다."
"비녀요?"
"돌아가신 영감이 50년 전 결혼기념일에 사 준 소중한 호박색 비녀란다. 벚꽃이 곱게 새겨져 있는데 말이지. 아까 머리를 매만지려고 보니 감쪽같이 사라졌지 뭐냐…… 까마귀 녀석이 물어간 건지……."
치요 할머니의 메마른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가슴이 콕콕 찔리듯 아파 왔다. 코하루는 늘 물건을 잃어버려 혼나기 일쑤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중한 것이 손안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 가슴 깊은 곳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그 쓸쓸한 기분을.
"할머니, 제가 찾아드릴게요! 꼭 찾아낼게요!"
"나도 찾을게! 치요 할머니 표 쑥 경단,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두 사람은 상점가 구석구석과 배수로 밑바닥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어스름이 짙게 깔릴 때까지 비녀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뎅, 뎅…….
오르골처럼 포근한 멜로디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오후 5시를 알리는 저녁노을 차임벨이었다.
"아, 5시다! 코하루, 나 지금 안 들어가면 할아버지한테 저녁 굶긴다고 혼나!"
"응, 타이가! 고마워! 조심해서 가!"
타이가가 손을 흔들며 언덕길을 달려 올라갔다.
언덕 너머 하늘이 타오르는 주홍빛에서 짙은 보랏빛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고,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
바로 그때였다.
『……추워……』
"어?"
귀 바로 옆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좀…… 어둡고 추워…… 나, 여기 있는데……』
"누구야……? 누구 있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머릿속에 또렷하게 메아리쳤다.
『……따뜻한 손…… 할아버지 손…… 만나고 싶어……』
"할아버지……? 치요 할머니의 비녀!?"
목소리는 언덕 위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코하루의 다리가 저절로 움직여 언덕 위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며 다다른 곳은 전망 좋은 언덕 위의 빈터.
낮에는 그저 참억새만 무성하던 자리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작은 양옥집 한 채가 우뚝 서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둥근 창문 너머로 따스한 등불 빛이 새어 나왔다.
나무로 된 문 위에는 황동 팻말이 걸려 있었다. 『쓰키미자카 역 분실물 취급소』.
"기차역 같은 건 없는데……."
끼이익…… 하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홍차와 오래된 책, 달콤한 밀랍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코하루는 조심스레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똑, 딱, 똑, 딱.
안쪽에서 커다란 괘종시계가 느릿하게 시간을 새기고 있었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선반에는 낡은 우산과 여행 가방, 밀짚모자, 짝 잃은 양말 등 수많은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갈색 짐표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어서 오렴. 길을 잃은 작은 새님."
카운터 안쪽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등꽃색 머리에 화살깃 무늬 리본. 기모노 위에 짙은 자주색 하카마를 입고, 둥근 안경과 허리춤에 찬 열쇠 꾸러미가 반짝 빛났다.
"저, 목소리가 들려서 왔는데요…… 여긴 어디인가요?"
"이곳은 『분실물의 관』. 마을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주인이 마중 나오기를 기다리는 곳이란다."
여성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관장을 맡고 있는 시오리라고 한단다. 마음에 '분실물'을 품은 분에게만 이 문이 열리는 법이지."
바로 그때, 나무 상자 속에서 복슬복슬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하아아암…… 어라, 으아아아악!? 사, 사람이 들어왔다폿케ーー!?"
새빨간 털실 장갑이었다. 달랑 한 짝뿐인데 손목에는 새하얀 털이 목도리처럼 둘러져 있고 머리에는 털 방울이 달려 있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귀와 꼬리처럼 쫑긋거렸다. 까만 콩알 같은 눈에 발그레한 분홍빛 볼.
"마, 말했어ーー!?"
"말하는 게 뭐 어때서폿케! 난 유서 깊은 츠쿠모가미 폿케 님이시다폿케! 저리 가라폿케!"
폿케는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책장 모서리에 쿵 하고 부딪혔다.
"에구…… 에에에-취!"
요란하게 재채기를 하며 카운터 위로 툭 떨어졌다. 시오리가 우아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폿케, 손님에게 무례하게 굴면 못써요."
"하, 하지만 인간이 찾아온 게 도대체 몇 년 만이냐폿케!? ……응? 킁킁……"
폿케는 벌떡 일어나 코를 킁킁거렸다.
"이, 이 냄새는…… 멜론빵이다폿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폿케~!"
배에서 꼬르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코하루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하하, 반 줄게. 자!"
빵을 뚝 떼어 건네주자 폿케는 두 손으로 빵을 꼭 껴안고 아주 맛있게 볼이 미어지도록 베어 물었다.
"맛있다폿케……!"
폿케는 황홀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멜론빵을 우물우물 먹었다.
"아, 난 호시카와 코하루야. 시오리 씨, 아까 밖에서 목소리를 들었어요. '어둡고 추워, 할아버지 손이 그리워'라고요."
시오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반 깊숙한 곳의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꺼낸 것은 비녀 하나였다.
석양빛을 머금어 투명하게 빛나는 호박색 거북 등껍질에 섬세하게 새겨진 벚꽃.
『따뜻해…… 누구 있어……?』
비녀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요 할머니의 비녀……!"
"까마귀가 장난을 치느라 물고 가다가 언덕 위에 떨어뜨려 길을 잃은 모양이더구나."
"저, 가져다주고 싶어요!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이란 말이에요!"
시오리는 따스하게 미소 지으며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황동으로 된 별 모양 테두리에 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
"이것은 『별 돋보기』. 분실물이 품고 있는 추억의 빛을 비춰 주는 렌즈란다. 이걸 가져가렴."
"별 돋보기…… 예쁘다……."
"폿케, 너도 도와주렴. 너의 털실이 지닌 따스함과 코하루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보이지 않는 실을 볼 수 있을 게다."
"내, 내 주인님……."
폿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난 내 반쪽 장갑이랑 따뜻한 손을 지닌 주인을 줄곧 찾고 있다폿케. ……멜론빵 은혜를 갚는 셈 치고 힘을 빌려주겠다폿케!"
폿케가 퐁 날아올라 코하루의 왼손에 쏙 끼워졌다. 찰칵!
손등에 폿케의 얼굴이 남았고, 따사로운 햇살 같은 온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딱 맞아! 따뜻해!"
"헤헷, 내 특기다폿케! 별 돋보기를 들여다봐라폿케!"
별 돋보기를 비녀 쪽으로 비추어 보았다.
딸깍.
비녀 끝에서 밤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붉은빛 줄기―― 포근한 실 한 가닥이 선명하게 보였다.
"빨간 실……?"
"물건과 주인을 이어주는 '기억의 실'이다폿케!"
"치요 할머니한테 이어져 있어!"
"자, 다녀오렴. 황혼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시오리가 미소를 머금고 배웅해 주었다.
"그 \"분실물\", 제가 전해 줄게요!"
코하루는 별 돋보기를 꽉 쥐고 분실물의 관을 힘차게 뛰쳐나왔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언덕길을 빨간 실을 따라 달렸다. 가로등이 하나둘 주황빛으로 켜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쿠오오오……!
차가운 돌풍이 사납게 몰아치더니 돌바닥 틈새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히익!? 이게 뭐냐폿케!?"
안개가 뭉게뭉게 뭉치더니 살이 부러지고 천이 찢겨나간 거대한 우산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꼭대기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둥근 눈. 시커먼 천을 질질 끌며 쿵, 쿵 다가왔다.
"나왔다ーー! '노라모노'다폿케!"
"노라모노!?"
"오랫동안 주인이 데리러 오지 않아 폭주해 버린 분실물의 비참한 말로다폿케! 비녀의 따뜻한 추억을 빼앗으러 온 거다폿케!"
파사삭 우산이 펼쳐지며 시커먼 칼바람이 몰아쳤다.
"히이익, 도망쳐라폿케~!"
폿케가 코하루의 후드 속으로 숨으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코하루는 도망치지 않았다.
노라모노의 동그란 눈에서 검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고 있어…… 화난 게 아니라, 울고 있는 거야!"
코하루는 왼손을 앞으로 곧게 뻗었다.
"폿케, 가자!"
폿케가 고개를 쏙 내밀고 숨을 훅 들이켰다.
"……읏, 알았다폿케! 맡겨달라폿케!"
코하루는 별 돋보기를 번쩍 치켜들고 가슴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
"별 돋보기, 오픈!"
키이이잉――!
별 돋보기가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며 찬란한 빛의 알갱이가 코하루를 감쌌다.
노란색 케이프가 노을빛 주황색 탐정 케이프로 바뀌고 가슴팍에 금빛 별 단추가 톡 채워졌다. 머리에는 별이 달린 베레모, 왼손에는 폿케, 오른손에는 별 돋보기.
"우와……! 탐정님 같다폿케!"
"간다, 노라모노!"
별 돋보기로 정면을 들여다보자 노라모노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노란 모자를 쓴 어린 소년의 머리 위로 커다란 어른 우산이 비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아빠 우산이 있어서 하나도 안 젖었어! 고마워!』
소년이 활짝 웃으며 우산 손잡이를 꼭 끌어안았다.
소중하게 쓰이던 우산. 하지만 태풍의 거센 바람에 살이 부러졌고, 정신없는 이삿날 그만 버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외로웠어…… 줄곧 기다렸는데…… 난 이제 아무도 지켜줄 수 없는 거야……?』
"그렇지 않아!"
코하루는 소리치며 노라모노를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넌 그 아이를 훌륭하게 지켜줬어! 우산살이 부러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지켜줬다는 걸 그 아이는 절대로 잊지 않았어!"
노라모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동그란 눈이 코하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쓸모가 다했다고 해서 버림받아 마땅한 건 절대 아니야. 넌 그 아이에게 최고의 영웅이었어!"
별 돋보기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황혼의 하늘을 향해 외쳤다.
"찾았다. ――어서 와, 분실물아!"
슈아아악!
금빛 빛의 고리가 노라모노를 부드럽게 감쌌다. 시커먼 안개가 스르르 풀리고 찢어진 우산은 부드러운 빛의 알갱이로 변해갔다.
『……고마워……』
소년의 앳된 목소리가 바람결에 녹아들고, 빛은 훌쩍 자란 소년의 방을 향해 날아갔다.
손안에 남은 것은 호박색 비녀뿐이었다.
"해냈다폿케ーー! 정화 대성공이다폿케!"
폿케가 공중에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변신의 빛이 사그라들며 평소의 옷차림으로 돌아왔다.
"서두르자, 치요 할머니께 가야 해!"
상점가 '아메야'로 돌아오자 치요 할머니는 여전히 가게 앞에 서 계셨다.
"할머니! 이거 찾았어요!"
호박색 비녀를 내밀자 치요 할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영감의 비녀……! 벚꽃도 다친 곳 하나 없구나……!"
할머니는 비녀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굵은 눈물을 떨구셨다.
"고맙구나, 코하루야…… 영감이 다시 돌아와 준 것만 같구나……."
치요 할머니의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이건 보답이란다. 갓 구운 조청 경단 좀 가져가렴."
대나무 껍질에 정성스레 싸인 경단을 건네받자 주머니 속의 폿케가 냄새를 맡고 코를 킁킁거렸다.
치요 할머니의 미소를 마주한 순간, 가슴 깊은 곳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잃어버렸던 소중한 추억이 다시 그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간다.
코하루는 왼손을 꽉 쥐었다.
"나…… 이 일, 하고 싶어!"
주머니 속에서 폿케가 "폿켓" 하고 기분 좋게 웅얼거렸다.
마을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실물들의 목소리를 전해 주는 탐정이 코하루는 될 것이다.
하지만――.
언덕 위 양옥집 지붕 위에 한 그림자가 우뚝 서 있다는 것을 코하루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은빛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는 차가운 회청색 눈동자의 소년.
소년은 은빛 회중시계를 엄지손가락으로 찰칵 튕겼다.
시곗바늘은 5시 정각을 가리킨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코하루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별 돋보기인가."
밤안개가 스르르 피어오르더니 소년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